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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4절, 좋았더라(טוֹב, 토브, good) - 히브리어 원어 정리

구약성경/히브리어 원어 정리

by 구레네하 2022. 9. 26.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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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빛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창세기 1장 4절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히브리어 성경에 'טוֹב'(토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טוֹב(토브)에 관한 히브리어 원어와 그 의미 등에 대해 정리하였습니다.

 

창세기 1장 4절, 좋았더라(טוֹב, 토브, good) - 히브리어 원어 정리
창세기 1장 4절, 좋았더라(טוֹב, 토브, good) - 히브리어 원어 정리

 

 

창세기 1장 4절, 좋았더라(טוֹב, 토브, good) - 히브리어 원어 정리

 

 

개역개정 성경과 ESV의 창세기 1장 4절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And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And God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히브리어 성경의 창세기 1장 4절

 

וַיַּ֧רְא אֱלֹהִ֛ים אֶת־הָאֹ֖ור כִּי־טֹ֑וב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טֹ֑וב(토브)에 대한 정리와 여러 해석들

 

히브리어 단어인 'טֹ֑וב'(토브)는 '좋은, 선한, 즐거운, 유쾌한', 명사로는 '좋은 것, 선, 이익, 번영, 복지'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60여 회 나옵니다. '선한'은 실제적인 혹은 경제적인 이익을 언급하는 것으로 잘 나온다. 좋은 열매(창 2:9)와 바로의 꿈에 나타난 이삭(창 41:5, 창 41:36)은 먹기에 좋은 것이었습니다.

 

1. טֹ֑וב(토브)는 선함을 의미한다.

요셉의 노예상태가 "좋은" 것은 양식과 민족의 생존 같은 실재적인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선하지 못한" 모세의 재판에는 실제의 행정적인 불이익도 포함되었다: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출 18:17). 토브로 전달된 다른 실제적인 선은 아합에게 거부한 승리의 약속(대하 18:7); 환대와 우정(창 26:29); 유익한 충고(삼하 17:7, 삼하 17:14); 일반적인 경제번영(왕상 10:7); 농업 번영(호 10:1, ASV);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암 9:4) 등이다. 그러나 국가의 풍기를 문란케 한(느 5:9) 강포한 삶(잠 16:29)과 행동은 "선하지 못하다"라고 일컬어진다.

노동의 "선"은 일에서 얻은 실제적인 이득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 3:13, 참조: RSV '기쁨' pleasure). "선"은 여러 가지 광범위한 추상적인 관점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선한 이름은 명성이나 평판의 관점에서 볼 때, 후손보다 더 낫다: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사 56:5). 다윗이 제후인 아기스에게 충성한 것은 "선한 것"으로 묘사된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삼상 29:9, RSV '흠이 없는' blameless).
엘리후는 진리나 타당성과 관련 지어볼 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동료들에게 요구했다: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욥 34:4).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있어, 노를 더디 내는 것은 이상적인 용사의 폭력적인 힘보다 더 바람직하였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2. טֹ֑וב(토브)는 '더 낫다'를 의미한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아이는 고집 센 왕보다 "더 나았다"(전 4:13). 이 단어는 심미적이거나 감각적인 선함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이나 매력(창 6:2), 리브가의 아리따움(창 24:16), 그리고 밧세바의 아름다움(삼하 11:2)을 묘사한다. 이 단어가 사람을 묘사할 때, 영어의 관용구는 '잘생긴' handsome이란 말을 사용한다(삼상 16:12). 감각적인 기쁨이나 좋은 것은 "단"이라고 묘사하는 데에서(렘 6:20), 그리고 다메섹의 물이 요단의 흙탕물보다 더 "낫다"는 나아만의 판단(왕하 5:12)에서 나타난다. 다른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서의 한 포도를 묘사하는 데에는 감각적인 매력도 포함되어 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삿 8:2).

 

3. טֹ֑וב(토브)는 '행복함'을 의미한다.

'선한'은 자주 '행복한' happy을 나타낸다. 이것은 왕이 결혼하는 때를 묘사한다: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시 45:1). 행복한 축제일은 "좋은 날"로 묘사되기도 한다: "왕의 조명이 이르는 각 도,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날로 경절을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에 8:17, RSV '휴일' holiday; 참조: 삼상 25:8). "좋은 마음"은 행복을 나타낸다(대하 7:10, 잠 15:15). 행복은 술에 의해 야기되기도 하는 것 같다(전 9:7).

 

4. טֹ֑וב(토브)는 '눈에 선하다'를 의미한다.

토브를 포함하는 관용어로는 선호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어떤 사람의] 눈에 선한"이란 용법이 있다. 이런 용법의 예들로는 도망친 노예가 어떤 곳을 거처로 택함(신 23:16, RSV "그를 기쁘게 하는 곳), 그리고 슬로브핫의 딸들이 남편으로 택함(민 36:6)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런 식으로 표현될 것이다(삼상 3:18). 이것은 타락하고 죄에 가득 찬 욕망을 묘사한다(창 19:8, 삿 19:24). 이런 경우에, 이 관용어는 도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5. טֹ֑וב(토브)의 기타 의미들

토브는 우수한 질이나 상재적인 가치에 대한 개념도 포함한다. 이런 식으로 이 단어는 하윌라의 "정"금(창 2:12)과 고급 향유(아 1:3, RSV "바르는 기름" anointing oils)를 묘사한다. 우수한 장인은 모세가 "준수하다" (즉 고귀하다)고 묘사되는 경우(출 2:2)처럼, 인간의 성품의 특성이나 고귀성과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지칭된다(사 41:7). 토브의 중요한 용법은 도덕적인 선을 가리킨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시 34:14, H15)라는 명령은 분명히 "선"을 도덕적인 악과 대조시킨다. 하나님께서 다루기 어려운 자기 백성을 가르치실 "선한 길"은 도덕적인 삶을 가리킨다(왕상 8:36). '선한'과 '옳은'을 뜻하는 야샤르는 종종 도덕적인 선을 뜻하는 유사한 말로 나온다(대하 14:1, 대하 31:20).

 



하나님께 사용된 טֹ֑וב(토브)

 

1.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어떤 용법들에는 앞에서 논의된 둘 이상의 의미의 영역들이 뒤섞여 있다. 옛 언약의 "좋은 땅"은 실제적이며, 경제적이며 미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신 1:25, 수 23:13). 마찬가지로, "선한 분"으로서의 하나님 개념도 "선한"이란 단어의 모든 가능한 의미들을 충분히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시 106:1, 대상 16:34), 좋으신 주님이시다(시 52:9).

구약성경에서 선의 개념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적인 것으로서의 선의 개념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선은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은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선은 인간의 힘의 통제권 밖에 존재한다(창 3:5).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단지 '선'이 아니라 선하신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사상이 철두철미하게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이 구약성경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였다.

하나님만이 오로지 선하신 분이시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서 그가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것, 율법을 주신 것(신 30:15, 잠 28:10), 그리고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출 18:9, 신 10:29 이하)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명백해졌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창조 활동(창 l:1-8)에서건, 그의 말씀에서건(사 39:8), 그의 영에서건(시 l43:10), 심지어 그가 반대자들에게 말하기 위해 나타나셨을 때 조차도(창 50:20) 그에게서 유래되는 모든 것은 선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하나님을 오로지 선하신 분으로 찬양하는 새로운 계기로 발전하였다.

 

2.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은 역사를 통한 그의 사역에서 선(참조: 출 l8:9)을 행하시는 바 그 목적은 구원이며, 율법을 통해 인간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데 있다. 선은 이미 행해져 왔으며, 또한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약속했던 선은 메시야적, 종말론적 구원에서 실제로 성취될 것이다(레 32:39 - 42; 사 52:7). 한편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선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선하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가능할 것인가는 논쟁이 되고 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전 7:20).

랍비 유대주의는 하나님의 선함이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선한 것과 성취 가능한 것은 율법에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법을 실행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있고 또 선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선은 오로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동료 인간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관대하심

마지막으로 앞의 논의에 비춰볼 때, 각 개별 용법은 앞의 의미들 중 어느 것이 가능한지를 고찰하기 위해 분명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수많은 문학적인 표현들은 특별한 취급을 필요로 한다. "선과 악"은 보편성에 대한 관용어로 이용된다(민 24:13, 삼하 13:22). 어떤 이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이런 보편성을 뜻하는 관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사하였다(창 2:9). 그러나 창세기 앞부분의 문맥은 전체적으로 이 어구의 도덕적 의미에 기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선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곧 동의나 수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도덕적 판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왕하 20:19, 참조: 삼상 20:7).

"선한 눈"은 관대함을 나타낸다(잠 22:9, RSV '관대한 눈' bountiful eye ). 전도서에서, "선을 보다" to see good는 좋은 것이나 삶의 기쁨을 경험하다로 번역된다(전 5:18, RSV '기쁨을 발견하다' find enjoyment; 전 6:6, RSV '선을 향유하지 못하다' enjoy no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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