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창세기 1장 2절, '면'(פָּנִים, 파님, face) - 히브리어 원어 정리

구약성경/히브리어 원어 정리

by 구레네하 2022. 9. 24. 08:46

본문

반응형

우리말에 얼굴을 뜻하는 한자어는 '면'(面)이 있듯이, 히브리어 단어들 중에 'פָּנִים'(파님) 역시 '얼굴'이란 뜻에서부터 시작하여 물체의 '겉'을 뜻하는 데 사용됩니다. 특히 창세기 1장 2절에는 '수면', '물의 표면'에 사용되는 단어가 'פָּנִים'(파님)입니다. פָּנִים(파님)에 관한 해석들을 정리하고, 히브리어 원어의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창세기 1장 2절, '면'(פָּנִים, 파님, face) - 히브리어 원어 정리
창세기 1장 2절, '면'(פָּנִים, 파님, face) - 히브리어 원어 정리

 

 

창세기 1장 2절, '면'(פָּנִים, 파님, face) - 히브리어 원어 정리

 

 

개역개정 성경과 ESV의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 위에 운행하시니라

The earth was without form and void, and darkness was over the face of the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face of the waters.

 

 

히브리어 성경의 창세기 1장 2절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פָּנִים(파님)에 대한 정리

 

פָּנִים(파님)의 원래 뜻은 '얼굴'(face)이며, 히브리어 'פנה'(파나)에서 나온 남성 명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100회 이상 나오는 매우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 중의 하나입니다.

 

 

פָּנִים(파님)에 대한 여러 해석들

 

1. פָּנִים(파님)은 항상 복수형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단어이다.

이 독특한 단어 파님은 항상 복수형으로 등장하는데 아마 얼굴이 수많은 부분들의 결합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 듯하다. 파님은 ① 사람의 얼굴(창 31:2), "그의 외모"(창 4:5), 한 인간 전체를 뜻하는 대용어(신 7:10)로 사용되었다. ② 관찰자에게로 향해진 면, 예를 들어 '지면'(창 2:6), ③ 이 단어는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전치사들과 함께 사용된다. 예를 들면, ~의 면전에서 before the face of, ~앞에서 before, ~속으로 into, ~의 정면에서 in front of, ~의 반대편에 opposite 등이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식별하게 해 주고 그 사람의 마음 가짐과 감정을 반영해 준다. 따라서 파님은 자아 또는 자아 감정의 대용어가 될 수 있다. 성경에서 얼굴은(신체의 여타 부분들과 함께) 사람의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외적 기관으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의 행동 방식과 관계되는 것으로 기술되었으며 따라서 어떤 인격성에 의해 특정 지어진다. 얼굴이 상대방의 감정, 기분, 성격을 묘하게도 밝혀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는 사실은 극히 당연하다.

"굳은" 얼굴은 반항(렘 5:3), 뻔뻔스러움(잠 7:13), 무자비함(신 28:50)의 표시이다. "빛나는" 얼굴은 기쁨의 증거이다(욥 29:24). "부끄러워하는" 얼굴은 패배, 좌절, 굴욕을 가리킨다(삼하 19:5). "불꽃같은" 얼굴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사 13:8). "나쁜" 얼굴은 근심 걱정으로 찌든 얼굴이다(창 40:7). "낙담한" 얼굴은 매우 강렬한 분노와 불쾌감에서 연유한다(창 4:5). 누군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은 그를 달래거나 또는 그의 호의를 구한다는 뜻이다(하나님께 대해, 왕상 13:6, 왕하 13:4). KJV는 이 마지막 문구를 "~가 여호와께 구했다/탄원했다" X sought/entreated the Lord라고 의역하였다(한글개역: "여호와께 간구하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문자적으로 "~가 여호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었다"로 된다. 마찬가지로 이 관용구는 사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잠 19:6).

"얼굴을 숨기다"라는 문구는 혐오감을 나타낸다는 의미이며(사 53:3) "얼굴을 돌리다"라는 것은 거부한다는 뜻이다(시 132:10). 역으로 타인의 "얼굴을 들어 올리다"는 호의, 존중, 수락을 나타내 보인다는 뜻이거나(삼상 25:35, 한글개역, "청을 허락하노라") 또는 편파성 편애를 드러낸다는 뜻이다(레 19:15, 한글개역, "편을 들지", "두호 하지"). 얼굴을 숙인다는 빈번한 표현은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님은 동물의 얼굴들에 해당하는 말로 역시 때때로 사용되었다(겔 1:10).

 

2. פָּנִים(파님)은 특히 하나님의 얼굴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① 위에서 언급한 인간의 얼굴에 관한 관용구들과 문구들의 대부분이 하나님께도 적용되었다.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와 신의의 표시로서 "환히 빛난다"(시 4:6). 그의 얼굴이 분노로 "침울해진다"(렘 3:12).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숨기기도" 하신다(시 13:1).

하나님이 얼굴을 드시거나 그의 얼굴을 이스라엘에 비추시면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은 평강(즉,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감추거나 돌리실 때 은혜를 거두어가심을 시사한다(참조: 시 13:2, 시 104:29). 하나님과의 교제의 행운을 가져오거나 하나님의 진노 하에 머무름을 가져오거나 하는 하나님의 작용과 반작용은, 그러한 신인 동형론적 묘사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가장 예외적 가능성으로 언급되어 있다(창 32:30,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창 16:13, 출 24:9 이하, 신 4:12, 삿 6:22 이하도 역시 참조).

"하나님의 얼굴을 뵙다"라는 구절이 5회 발견되는데 아마 종교 예배를 위해 성소를 찾아간다는 뜻의 전문 용어일 것이다. 다섯 구절은 출 23:15, 출 34:20, 신 31:11, 시 42:2, 사 1:12이다. 이 보기들의 각 경우에서 동사 라아('보다' to see)는 니팔형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나타나다" to appear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다는 개념을 "앞에 나타나다" appearing before라는 개념으로 유화시킨 것이다. 한 용례에서(삼상 1:22) 니팔형이 자음 본문에 의해 명시되어 있다. 여기를 니팔 부정사형 레라오트 파나이(하나님 "앞에 나타나다" to appear before God)로 생각할 수 있으며 또 그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칼 부정사형인 리로트 파나이의 가능성은 출 33:20에 비추어 볼 때 상상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몇몇 예외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야곱(창 32:30)과 모세(출 33:11)의 경우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face to face 보았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보거나 또는 그 음성을 듣기만 해도 그는 죽게 된다(출 19:21). 하나님 얼굴을 보는 경험이 얼마나 위험스러운지 항상 강조하고 있다.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본다면 그는 죽어야 하는 것이다(출 33:20, 참조: 사 6:5).

이러한 이유로 모세(출 3:6)와 엘리야(왕상 19:13) 그리고 스랍조차도(사 6:2) 하나님 면전에서 그들의 얼굴을 가렸다. 하나님을 본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은 놀람과 감사(창 32:30, 신 5:24), 두려움(삿 6:22, 삿 6:23, 삿 13:22, 사 6:5)으로 압도당하게 된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출현하셨으며 그만이 아버지를 보았다(요 1:18, 요 6:46, 요일 4:1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통로가 되는 말씀일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기도 하다.

출 33장에서 세 가지 세가지 다른 전승들 - 여호와는 인도자로 한 천사를 보내신다. 성막을 통한 여호와와의 유대 - 여호와의 얼굴(파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신다 - 는 시내산으로부터 떠난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기본적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전승의 셋째 번 것에서 파님(출 33:14 이하)은 여호와의 이스라엘에게 현현으로 특이하게 인성화된 것 같다. 이것은 해석상에 다양한 시도를 낳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의 파님"을 "나 자신"으로, 즉 여호와의 인격적 임재에 대한 강조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또 혹자들은 이 구절이 제사장은 제사 때에 가면을 사용했다는 그네들의 주장을 정당화시켜 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소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여호와의 얼굴이 임재하셨음, 즉 하나님의 얼굴이 인간을 향하셨음을 의미한다고 이 구절을 해석한다. 이 구절에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해석이 제시될 수 없다.

② 하나님의 얼굴이 성전과 관련하여 언급되어질 때, 이 용어는 제사와 관련된 것이다. 성경의 범위를 넘어선 이 단어의 용법이 여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스라엘 주변의 열방은 신의 얼굴을 성전 우상의 얼굴로 만들어 이를 보고 예배하였다.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사용된 우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용어는 예배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였다고 했을 때 비유적 의미로만 사용될 수 있었다(시 24:6, 시 42:2 [마소라 42:3], 슥 8:21 [마소라와 70인 역본], 말 1:9 [마소라]).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심을 의미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특히 그것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한다. 끝으로 제사를 아주 떠나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간구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편 기자는 시 105:4에서 "계속적으로" 이렇게 할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하고 있다. 진설병(출 25:30)의 문자적 의미는 "얼굴의 떡"("임재의 떡" RSV)인 것이다. 이런 떡 덩이들이 이교도 제사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의 제사에서는 이 떡들이 신의 음식 역할을 했던 것이다(참조: 렘 7:18). 이스라엘이 이 관습을 이어받았을 때 떡 Bread(아토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음식으로가 아닌 예물로 유향과 함께 특별히 마련된 식탁 위에 놓였다.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하여 출 35:13, 출 39:3, 민 4:11, 삼상 21:6, 왕상 7:48, 대상 9:32, 대상 23:29, 대상 28:16, 대하 2:4, 대하 4:19, 대하 13:11, 대하 29:18, 느 10:33, 마 12:4, 막 2:26, 눅 6:4, 히 9:2, 요세푸스의 저서(Ant., 3, 6, 6; 3, 10, 7)를 보라.

③ 랍비 유대주의에서 사람의 최고의 소망은, 죽음에 임한 시각에와 메시아의 날 후에 다가올 세상에서, 혹은 어떤이의 의견에 따르면, 메시야의 시절 동안에라도, 셰키나의 얼굴 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빛의 반사를 받아 의인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지만(단 12:3) 불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자카이의 아들 요난(R. Johanan b. Zakkai)이 죽음의 침상에서 두려워한 것을 대조해 보라.

 

 

참고할 글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